사도행전 누가식 자기 주석서

사도행전 1장

개역한글 본문과 책별 보충 설명 형식, 주해, 네 갈래 신학 노트를 장별로 배열한 정적 문서입니다.

행 1장 · 26절

사도행전 1장

1단위. 사도행전 1:1–11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누가는 먼저 쓴 글을 이어,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고 성령의 약속을 기다리게 하신 일을 기록합니다. 예수의 승천은 사명의 끝이 아니라 성령께서 증인들을 세우시는 새 국면의 시작입니다.

중심 명제: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누가복음의 결말은 사도행전 서두에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현재 통치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 예수께서 성령의 약속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증언을 열어 가시므로, 이 단락은 복음서의 완결이 아니라 새 언약 증언의 공적 출발입니다.

조직신학

기독론적으로 예수는 떠나신 교사가 아니라 하늘에 오르셔서 자기 교회를 보내시는 주이십니다. 성령론적으로 교회의 사명은 사람의 열심이나 전략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과 그리스도의 명령에 근거합니다.

역사신학

정통 교회의 예배와 교리 교육은 이 본문을 승천, 오순절 대기, 사도적 증언의 출발점으로 함께 읽어 왔습니다. 이 해석 전통은 성령의 능력을 개인 체험의 과시가 아니라 교회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우시는 은혜로 이해하게 합니다.

학문·목회 적용

성령의 능력을 성공 기술이나 감정 고조로 축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주께서 증인을 세우시는 권위와 기다림의 순종을 함께 말합니다.

사도행전 1:1

개역한글 본문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절의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은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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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

개역한글 본문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2절의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2는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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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

개역한글 본문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3절의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은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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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4

개역한글 본문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4절의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4는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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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

개역한글 본문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5절의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5는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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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

개역한글 본문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6절의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6은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라는 본문 단서는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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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

개역한글 본문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7절의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7은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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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

개역한글 본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8은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된다는 약속은 교회의 사명이 성령의 능력에서 나온다는 사도행전의 중심축입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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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

개역한글 본문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9절의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9는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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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0

개역한글 본문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0절의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0은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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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1

개역한글 본문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1절의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라는 장면을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은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 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라는 본문 단서는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1의 승천하신 주와 성령의 약속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1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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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단락 종합

누가는 먼저 쓴 글을 이어,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고 성령의 약속을 기다리게 하신 일을 기록합니다. 예수의 승천은 사명의 끝이 아니라 성령께서 증인들을 세우시는 새 국면의 시작입니다.

사도행전의 증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자기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는 일로 시작된다.

신학적 통합

누가복음의 결말은 사도행전 서두에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현재 통치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 예수께서 성령의 약속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증언을 열어 가시므로, 이 단락은 복음서의 완결이 아니라 새 언약 증언의 공적 출발입니다.

기독론적으로 예수는 떠나신 교사가 아니라 하늘에 오르셔서 자기 교회를 보내시는 주이십니다. 성령론적으로 교회의 사명은 사람의 열심이나 전략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과 그리스도의 명령에 근거합니다.

세미나용 토론 질문

  • 사도행전 1:1–11 본문은 성령으로 증언하게 하시는 승천하신 주를 누가-사도행전 전체 흐름과 어떻게 연결하는가?
  • 이 단락은 성령의 주도권과 교회의 증언을 인간 자랑이나 사역 성과주의로 바꾸지 않으면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 오늘의 신학 교육과 목회 현장에서 이 단락이 경계하는 오해는 무엇인가?

2단위. 사도행전 1:12–26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고,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성경의 성취 안에서 이해합니다. 맛디아의 선출은 부활 증언의 사도적 기초가 사람의 야심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세워짐을 보여 줍니다.

중심 명제: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시편의 말씀이 유다의 빈자리와 맛디아의 보충을 해석하면서, 부활 증언을 맡을 열둘의 기초가 보존됩니다. 이 단락은 새 언약 백성의 증언이 인간 조직의 임의적 보완이 아니라 성경의 성취와 부활 목격 증언 안에서 세워짐을 보여 줍니다.

조직신학

교회론적으로 직분은 권력의 지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공적으로 증언하도록 주께서 세우시는 섬김입니다. 성경론적으로 교회는 중요한 분별을 자기 판단만으로 처리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말씀의 빛 안에서 이해합니다.

역사신학

초대교회와 이후의 직분 논의는 이 본문에서 사도직의 고유성과 공동체적 분별의 한계를 함께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모든 시대의 의사결정 방식을 기계적으로 정하는 규칙이 아니라 사도적 기초가 보존되는 독특한 전환기 사건으로 읽어야 합니다.

학문·목회 적용

제비 뽑기를 오늘 모든 결정의 보편 규칙으로 단순 적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부활 증언의 공적 기초를 세우는 독특한 전환기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1:12

개역한글 본문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2절의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는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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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3

개역한글 본문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3절의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3은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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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4

개역한글 본문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4절의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4는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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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5

개역한글 본문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5절의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5는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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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6

개역한글 본문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6절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6은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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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7

개역한글 본문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7절의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7은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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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8

개역한글 본문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8절의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섭리가 무모함이 아니라 책임 있는 순종을 낳는 믿음의 틀임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섭리를 운명론이나 무모함의 허가로 바꾸지 말고 약속을 붙든 책임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8은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섭리가 무모함이 아니라 책임 있는 순종을 낳는 믿음의 틀임을 확인한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라는 본문 단서는 섭리가 무모함이 아니라 책임 있는 순종을 낳는 믿음의 틀임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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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9

개역한글 본문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19절의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9는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라는 본문 단서는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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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0

개역한글 본문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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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장 20절의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교회의 질서가 말씀과 약자 돌봄을 함께 지키는 섬김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직분을 권력으로 만들지 말고 말씀과 약자 돌봄을 함께 지키는 책임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20은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교회의 질서가 말씀과 약자 돌봄을 함께 지키는 섬김임을 보여 준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라는 본문 단서는 교회의 질서가 말씀과 약자 돌봄을 함께 지키는 섬김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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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1

개역한글 본문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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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장 21절의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21은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라는 본문 단서는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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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2

개역한글 본문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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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장 22절의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22는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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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3

개역한글 본문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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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장 23절의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23은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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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4

개역한글 본문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24절의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24는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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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5

개역한글 본문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25절의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25는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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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6

개역한글 본문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장 26절의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라는 장면을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26은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2–26의 기도하는 공동체와 맛디아의 보충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2–26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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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6 단락 종합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고,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성경의 성취 안에서 이해합니다. 맛디아의 선출은 부활 증언의 사도적 기초가 사람의 야심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세워짐을 보여 줍니다.

주께서 자기 증언의 기초를 보존하시며, 교회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맡겨진 증언의 질서를 받는다.

신학적 통합

시편의 말씀이 유다의 빈자리와 맛디아의 보충을 해석하면서, 부활 증언을 맡을 열둘의 기초가 보존됩니다. 이 단락은 새 언약 백성의 증언이 인간 조직의 임의적 보완이 아니라 성경의 성취와 부활 목격 증언 안에서 세워짐을 보여 줍니다.

교회론적으로 직분은 권력의 지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공적으로 증언하도록 주께서 세우시는 섬김입니다. 성경론적으로 교회는 중요한 분별을 자기 판단만으로 처리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말씀의 빛 안에서 이해합니다.

세미나용 토론 질문

  • 사도행전 1:12–26 본문은 말씀과 기도 속에서 세워지는 사도적 증언을 누가-사도행전 전체 흐름과 어떻게 연결하는가?
  • 이 단락은 성령의 주도권과 교회의 증언을 인간 자랑이나 사역 성과주의로 바꾸지 않으면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 오늘의 신학 교육과 목회 현장에서 이 단락이 경계하는 오해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