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누가식 자기 주석서

사도행전 11장

개역한글 본문과 책별 보충 설명 형식, 주해, 네 갈래 신학 노트를 장별로 배열한 정적 문서입니다.

행 11장 · 30절

사도행전 11장

19단위. 사도행전 11:1–30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고넬료 사건을 설명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찬송합니다. 안디옥에서는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하고, 바나바와 사울이 교회를 가르칩니다.

중심 명제: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의 성장은 고넬료 사건이 일회적 예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신 구속사적 확장임을 보여 줍니다. 안디옥은 열방 선교, 말씀 교육, 기근 속 구제가 결합되는 새 중심지로 세워집니다.

조직신학

구원론적으로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입니다. 교회론적으로 교회의 분별은 자기 전통을 절대화하지 않고, 말씀과 성령의 열매와 복음의 동일성을 따라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인정합니다.

역사신학

안디옥 교회는 초기 선교, 교육, 구제의 중요한 거점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교회의 해석 전통은 이 장면을 지역 교회의 경쟁이 아니라 한 복음 안에서 교회를 넓히시는 하나님의 일로 읽었습니다.

학문·목회 적용

새 지역의 성장을 기존 공동체와의 경쟁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한 복음 안에서 교회를 넓히시는 일을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 11:1

개역한글 본문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절의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라는 본문 단서는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

개역한글 본문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절의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3

개역한글 본문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3절의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3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라는 본문 단서는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4

개역한글 본문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4절의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4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5

개역한글 본문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5절의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5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6

개역한글 본문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6절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6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7

개역한글 본문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7절의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7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8

개역한글 본문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8절의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8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라는 본문 단서는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9

개역한글 본문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9절의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9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0

개역한글 본문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0절의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0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1

개역한글 본문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1절의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1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라는 본문 단서는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2

개역한글 본문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2절의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2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3

개역한글 본문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3절의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3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4

개역한글 본문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4절의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4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라는 본문 단서는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5

개역한글 본문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5절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5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6

개역한글 본문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것이 생각났노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6절의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것이 생각났노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6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것이 생각났노라"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7

개역한글 본문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7절의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7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라는 본문 단서는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8

개역한글 본문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8절의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8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생명 얻는 회개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고백은 이방인 수용의 신학적 핵심입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19

개역한글 본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19절의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법정과 결박의 자리가 오히려 증언의 자리로 바뀜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권력을 미화하지 말고 주께서 막힌 길을 증언의 자리로 바꾸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19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법정과 결박의 자리가 오히려 증언의 자리로 바뀜을 드러낸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라는 본문 단서는 법정과 결박의 자리가 오히려 증언의 자리로 바뀜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0

개역한글 본문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0절의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0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1

개역한글 본문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1절의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1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2

개역한글 본문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2절의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반대와 권력의 압박이 복음 증언을 막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권력을 미화하지 말고 주께서 막힌 길을 증언의 자리로 바꾸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2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반대와 권력의 압박이 복음 증언을 막지 못함을 보여 준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라는 본문 단서는 반대와 권력의 압박이 복음 증언을 막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3

개역한글 본문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3절의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3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4

개역한글 본문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4절의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4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5

개역한글 본문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5절의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5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라는 본문 단서는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6

개역한글 본문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6절의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권력을 미화하지 말고 주께서 막힌 길을 증언의 자리로 바꾸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6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라는 본문 단서는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7

개역한글 본문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7절의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7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8

개역한글 본문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8절의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8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라는 본문 단서는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29

개역한글 본문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29절의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29는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라는 본문 단서는 하나님이 먼저 길을 여시고 교회가 그 일을 인정하게 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사도행전 11:30

개역한글 본문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1장 30절의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라는 장면을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공동체 문제를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목적 아래 다루게 한다. 그러므로 직분을 권력으로 만들지 말고 말씀과 약자 돌봄을 함께 지키는 책임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1:30은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 안에서 공동체 문제를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목적 아래 다루게 한다.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공동체 문제를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목적 아래 다루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1:1–30의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를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1:1–30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목차로 돌아가기

11:1–30 단락 종합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고넬료 사건을 설명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찬송합니다. 안디옥에서는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하고, 바나바와 사울이 교회를 가르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듣고 인정하며, 안디옥에서 열방을 향한 말씀 교육과 구제의 공동체로 자라난다.

신학적 통합

예루살렘의 확인과 안디옥 교회의 성장은 고넬료 사건이 일회적 예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신 구속사적 확장임을 보여 줍니다. 안디옥은 열방 선교, 말씀 교육, 기근 속 구제가 결합되는 새 중심지로 세워집니다.

구원론적으로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입니다. 교회론적으로 교회의 분별은 자기 전통을 절대화하지 않고, 말씀과 성령의 열매와 복음의 동일성을 따라 하나님의 선행하신 일을 인정합니다.

세미나용 토론 질문

  • 사도행전 11:1–30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회개를 누가-사도행전 전체 흐름과 어떻게 연결하는가?
  • 이 단락은 성령의 주도권과 교회의 증언을 인간 자랑이나 사역 성과주의로 바꾸지 않으면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 오늘의 신학 교육과 목회 현장에서 이 단락이 경계하는 오해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