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누가식 자기 주석서

사도행전 13장

개역한글 본문과 책별 보충 설명 형식, 주해, 네 갈래 신학 노트를 장별로 배열한 정적 문서입니다.

행 13장 · 52절

사도행전 13장

21단위. 사도행전 13:1–12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디옥 교회가 예배하며 금식할 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십니다. 구브로에서 마술사 엘루마는 복음을 막지만, 주의 손이 그를 꺾고 총독은 주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깁니다.

중심 명제: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안디옥의 예배와 금식 가운데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심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열방의 복과 이사야의 빛 소명이 구브로를 향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거짓 선지자의 방해가 꺾이는 장면은 주께서 말씀의 길을 여시고 열방 가운데 자기 증언을 세우심을 보여 줍니다.

조직신학

성령론적으로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입니다. 사역론적으로 복음 사역의 권위는 인간 카리스마보다 성령의 부르심과 주의 말씀에 있습니다.

역사신학

안디옥 파송은 교회의 이방 선교 전통에서 중요한 출발점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정통 해석은 이 본문을 사역자 영웅담이나 성과주의로 만들지 않고, 성령께서 보내시고 말씀이 길을 여는 사건으로 읽습니다.

학문·목회 적용

선교를 성과주의나 사역자 영웅담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성령께서 보내시고 말씀께서 길을 여십니다.

사도행전 13:1

개역한글 본문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절의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은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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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

개역한글 본문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절의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는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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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

개역한글 본문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절의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은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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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

개역한글 본문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절의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는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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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5

개역한글 본문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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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3장 5절의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5는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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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6

개역한글 본문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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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3장 6절의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6은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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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7

개역한글 본문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7절의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법정과 결박의 자리가 오히려 증언의 자리로 바뀜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권력을 미화하지 말고 주께서 막힌 길을 증언의 자리로 바꾸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7은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법정과 결박의 자리가 오히려 증언의 자리로 바뀜을 드러낸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라는 본문 단서는 법정과 결박의 자리가 오히려 증언의 자리로 바뀜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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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8

개역한글 본문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8절의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반대와 권력의 압박이 복음 증언을 막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권력을 미화하지 말고 주께서 막힌 길을 증언의 자리로 바꾸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8은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반대와 권력의 압박이 복음 증언을 막지 못함을 보여 준다.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라는 본문 단서는 반대와 권력의 압박이 복음 증언을 막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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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9

개역한글 본문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9절의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9는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라는 본문 단서는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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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0

개역한글 본문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0절의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0은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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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1

개역한글 본문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1절의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1은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의 임재가 말씀을 알아듣게 하고 열방에게 향하게 함을 밝힌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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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2

개역한글 본문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2절의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라는 장면을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권력을 미화하지 말고 주께서 막힌 길을 증언의 자리로 바꾸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2는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 안에서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12의 안디옥의 파송과 구브로의 대적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1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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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2 단락 종합

안디옥 교회가 예배하며 금식할 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십니다. 구브로에서 마술사 엘루마는 복음을 막지만, 주의 손이 그를 꺾고 총독은 주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깁니다.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이다.

신학적 통합

안디옥의 예배와 금식 가운데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심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열방의 복과 이사야의 빛 소명이 구브로를 향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거짓 선지자의 방해가 꺾이는 장면은 주께서 말씀의 길을 여시고 열방 가운데 자기 증언을 세우심을 보여 줍니다.

성령론적으로 선교는 교회의 소유 사업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배하는 교회 가운데 일꾼을 보내시는 주의 일입니다. 사역론적으로 복음 사역의 권위는 인간 카리스마보다 성령의 부르심과 주의 말씀에 있습니다.

세미나용 토론 질문

  • 사도행전 13:1–12 본문은 성령께서 보내시는 선교를 누가-사도행전 전체 흐름과 어떻게 연결하는가?
  • 이 단락은 성령의 주도권과 교회의 증언을 인간 자랑이나 사역 성과주의로 바꾸지 않으면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 오늘의 신학 교육과 목회 현장에서 이 단락이 경계하는 오해는 무엇인가?

22단위. 사도행전 13:13–52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바울은 회당에서 이스라엘 역사와 다윗 약속을 따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서 믿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선포합니다.

중심 명제: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는 출애굽, 사사와 왕, 다윗 언약, 시편의 부활 약속, 이사야의 이방의 빛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결합합니다. 이스라엘의 약속은 부활하신 구주 안에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 이방인의 기쁨으로 확장됩니다.

조직신학

구원론적으로 의롭다 하심은 율법 수행의 공로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성경론적으로 사도적 설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읽고, 복음 거부와 복음 수용의 책임을 함께 말합니다.

역사신학

교회는 이 설교를 바울의 회당 설교와 은혜 중심 구원 이해의 중요한 요약으로 보았습니다. 정통 해석은 유대인의 반대를 반유대주의로 일반화하지 않고, 복음 거부의 책임과 이방인에게 열린 은혜를 함께 붙듭니다.

학문·목회 적용

유대인의 반대를 반유대주의로 일반화하면 안 됩니다. 본문은 복음을 거절하는 책임과 말씀을 기뻐하는 이방인의 은혜를 함께 말합니다.

사도행전 13:13

개역한글 본문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3절의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위기와 이동 속에서도 하나님이 증언의 길을 보존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섭리를 운명론이나 무모함의 허가로 바꾸지 말고 약속을 붙든 책임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3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위기와 이동 속에서도 하나님이 증언의 길을 보존하심을 보여 준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라는 본문 단서는 위기와 이동 속에서도 하나님이 증언의 길을 보존하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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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4

개역한글 본문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4절의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권력을 미화하지 말고 주께서 막힌 길을 증언의 자리로 바꾸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4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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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5

개역한글 본문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5절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5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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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6

개역한글 본문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6절의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6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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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7

개역한글 본문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7절의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7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라는 본문 단서는 성령께서 증언의 주도권을 가지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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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8

개역한글 본문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8절의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8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라는 본문 단서는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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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9

개역한글 본문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19절의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19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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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0

개역한글 본문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0절의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0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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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1

개역한글 본문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1절의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고난이나 권력을 미화하지 말고 주께서 막힌 길을 증언의 자리로 바꾸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1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라는 본문 단서는 고난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의 길을 보존하심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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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2

개역한글 본문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2절의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2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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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3

개역한글 본문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3절의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3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라는 본문 단서는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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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4

개역한글 본문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4절의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4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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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5

개역한글 본문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5절의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5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라는 본문 단서는 말씀이 사건을 해석하고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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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6

개역한글 본문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6절의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6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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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7

개역한글 본문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7절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7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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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8

개역한글 본문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8절의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8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라는 본문 단서는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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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29

개역한글 본문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29절의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29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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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0

개역한글 본문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0절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0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라는 본문 단서는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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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1

개역한글 본문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1절의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1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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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2

개역한글 본문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2절의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2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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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3

개역한글 본문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3절의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3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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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4

개역한글 본문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4절의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4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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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5

개역한글 본문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5절의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5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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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6

개역한글 본문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6절의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거짓 예배가 회개로 부름받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상 비판을 조롱으로 사용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께 돌이키라는 부름으로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6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거짓 예배가 회개로 부름받음을 드러낸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라는 본문 단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거짓 예배가 회개로 부름받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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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7

개역한글 본문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7절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7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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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8

개역한글 본문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8절의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8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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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39

개역한글 본문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39절의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39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믿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선포는 율법의 멍에를 넘어 그리스도의 은혜를 밝힙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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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0

개역한글 본문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0절의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0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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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1

개역한글 본문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1절의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1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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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2

개역한글 본문 저희가 나갈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2절의 "저희가 나갈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2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저희가 나갈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초점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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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3

개역한글 본문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3절의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3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라는 본문 단서는 사도적 증언이 성경의 권위 아래 서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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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4

개역한글 본문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4절의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4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라는 본문 단서는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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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5

개역한글 본문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5절의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5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이 혈통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약속을 열방에게 펼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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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6

개역한글 본문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6절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의 말재주로 낮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께 묶어 들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6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라는 본문 단서는 복음의 전진이 사람의 웅변보다 주어진 말씀에 의존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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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7

개역한글 본문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7절의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7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는 본문 단서는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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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8

개역한글 본문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8절의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8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는 본문 단서는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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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49

개역한글 본문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49절의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49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구원의 응답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주의 은혜에 붙들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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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50

개역한글 본문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누가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13장 50절의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방 확장을 이스라엘 폐기나 민족 비하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와 은혜의 확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50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라는 본문 단서는 이방인의 참여가 약속의 폐기가 아니라 은혜의 확장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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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51

개역한글 본문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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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3장 51절의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을 공로로 만들지 말고 은혜가 낳는 응답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51은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라는 본문 단서는 회개와 믿음이 은혜를 받는 응답으로 제시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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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52

개역한글 본문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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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3장 52절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라는 장면을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단락 안에 둔다. 데오빌로여, 이 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 경쟁의 표지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시는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사도행전 13:52는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 안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라는 본문 단서는 위로부터 주어진 능력이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능하게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절은 13:13–52의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와 이방인의 기쁨을 떠나 독립 표어나 사역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3:13–52 전체의 중심 명제는 이 절을 해석하는 울타리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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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52 단락 종합

바울은 회당에서 이스라엘 역사와 다윗 약속을 따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서 믿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약속을 성취한 구주이며,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까지 향한다.

신학적 통합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는 출애굽, 사사와 왕, 다윗 언약, 시편의 부활 약속, 이사야의 이방의 빛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결합합니다. 이스라엘의 약속은 부활하신 구주 안에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 이방인의 기쁨으로 확장됩니다.

구원론적으로 의롭다 하심은 율법 수행의 공로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성경론적으로 사도적 설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읽고, 복음 거부와 복음 수용의 책임을 함께 말합니다.

세미나용 토론 질문

  • 사도행전 13:13–52 본문은 약속하신 구주와 믿음으로 얻는 의를 누가-사도행전 전체 흐름과 어떻게 연결하는가?
  • 이 단락은 성령의 주도권과 교회의 증언을 인간 자랑이나 사역 성과주의로 바꾸지 않으면서 어떻게 설명하는가?
  • 오늘의 신학 교육과 목회 현장에서 이 단락이 경계하는 오해는 무엇인가?